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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경훈 박사 질의응답

 

1) 질문: 필자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사용하는 주인이라는 소유자와 피소유자의 관계로 본다. 또 한편에서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만든 기계와의 관계를 통해 이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의 권능을 납득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본다. 이런 관점이라면 기계의 확장으로서의 인공지능과 인간이라는 명확한 이원적 구분은 타협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도 보인다. 이에 대한 보충설명을 청한다.

While you view the relationship between men and machines as that of the owners and the machines, who are "the masters of the machines that they have made and use," you say that "it is their own relationship to their machines that will convince them of a divine power who has created this universe." From this, it is unclear that whether he still maintains the clear dualistic distinction between human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or there would be a way for the two to be harmonized and understood as a part of nature under the Ultimate Mystery. It would be better for you to elaborate it a bit further for the readers.

 

1) 마이클 아말라도스 신부 답변

Artificial Intelligence remains artificial. They are made by the humans. They do not become part of nature. They are not part of the humans either. They are not God’s creatures. It is an analogy to say that just God makes the world, the humans make machines. This does not link machines directly to God as part of nature. These machines are not creatures (of God), but objects made by the humans. They are not independent of the humans as nature is. So they do not become part of the Ultimate Mystery, except through the humans. So we cannot humanize or spiritualize the machines.

인공지능은 인공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인공지능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공지능은 자연의 부분이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어느 쪽도 사람의 일부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다. 이것은 자연의 일부로서 기계들이 직접적으로 하느님에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기계들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건들이다. 기계들은 자연적으로 사람들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그래서 기계들은 사람들을 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궁극적인 신비의 부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계들을 인간화하거나 영적화 할 수 없다.

 

2) 질문: 성경에는 하느님이 천지창조 후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셨는데, 그 창조물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나 기계는 제외되는 것인가? 바꿔 말해,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이 만든 인공’(artificial)이라는 것도 하나하나 해체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아닌 것이 없다는 점에서 자연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무엇인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생태적 재앙과 관련해 언급하면서 만약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이 세계적인 재앙이 우리의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 우리 자신의 삶, 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 주인이라는 주장과 무관하다고 상상하기 어렵다.”(34)고 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이제는 하느님과 인간을 섬기고 모시는 경천(敬天)과 경인(敬人)뿐만 아니라 경물(敬物)의 차원까지 나아가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필자가 제시한 관계론적인 우주신인론(Cosmotheandrism)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한 필자의 고견을 청한다.

In the Bible, God said, 'It was good to see' after creation, but is human-made artificial intelligence or machine excluded from the creatures seen good? In other words, wouldn’t it be a possible thought that humans are part of nature and that man-made artisans belong to nature in that there is nothing left other than fundamental four elements such as soil, water, fire and water, given that they are dismantled one by one? What is your theological view of this? Similarly, Pope Francis spoke of ecological disaster in his latest encyclical, Fratelli Tutti: “If everything is connected, it is hard to imagine that this global disaster is unrelated to our way of approaching reality, our claim to be absolute masters of our own lives and of all that exists”. (no.34) This suggests that Christianity should now move to ‘worshiping or revering God, humans and things’, so that it can get closer to the relational Cosmotheandrism that you have suggested from anthropocentrism? I ask for your opinion on this.

 

2) 마이클 아말라도스 신부 답변

What the Pope is saying is that we are not absolute masters of our own lives and of all that exists. We are subject to God in the way we live and use the earth’s goods. We worship God as creator. But we do not worship the humans or nature (creation), much less the machines. Cosmotheandrism suggests that everything is connected, not that everything is the same. The machines help us and obey us, as we obey God. The relationship here is one of subordination, not of equality, much less oneness. Because the humans are intelligent and loving they can relate to God. But the relationship can be one of obedience or disobedience. The humans have a will. They can love God, be obedient, etc. The machines are made by us. They do what they are made for. They are not doing it consciously. They have no will. They cannot say ‘no’ as we can. They can breakdown. But it is not a conscious or wilful action. The universe is real and ordered. But everything is not the same.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과 현존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지구의 재화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느님에게 대상이다. 우리는 창조자로서 하느님을 경배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나 자연(창조)을 경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기계도 아니다. 우주신인론이(Cosmotheandrism) 모든 것을 연결되었다는 것을 제안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들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순명하는 것처럼 우리를 돕고 우리에게 복종한다. 여기서의 관계는 더 일관성이 없는 평등이 아니라 종속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적이고 그들이 하느님과 연결할 수 있도록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순명이나 불순명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순명하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 기계들은 우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기계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것을 한다. 그들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의지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한 것처럼 아니오라고 할 수 없다. 기계는 고장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적이거나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다. 우주는 진짜이고 질서정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같지 않다.

 

3) 질문: 필자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절과 교회 또는 사원에 함께 모였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히 상황을 점검하고 적절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논문의 후반부에서 이점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 뒷부분에서 다시 이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지, 전례 쇄신, 특히 신화화또는 형해화 되어가는 성체성사의 쇄신에 대한 것을 빼고는 그러한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교회가 절실히 개혁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고견을 청한다.

You said, “In the past, temples and churches or mosques were the places where the people came together. If they are not so attractive today, we certainly have to examine the situation and initiate appropriate reforms. I shall come back to this point later.” But I can’t see that you actually did it in the “later part” except the necessary renewal of liturgies including the Eucharist. What do you think about urgent reformation of the church facing the pandemic era?

 

3) 마이클 아말라도스 신부 답변

In the early Church, the people may not have met in big churches, but in homes. So if the people cannot come to church today, nothing stops them in getting together in small groups. In the early Church, a leader of a group like this gave thanks over the bread and wine and distributed it to the community. We can go back to a similar practice today.

Secondly, during this pandemic, the people who are not able to come together physically in one place link with each other through the internet. Watching a mass recorded somewhere, sometime, is different from participating in a ceremony virtually. I think that today such a virtual participation is a valid participation. I have written an article about it which I am attaching. It can be recommended that people participate virtually, not only individually or as family, but that a few families get together and do so because then there would be a sense of community.

The only problem is the communion. In such a situation, one can communicate only spiritually, not materially. One possibility is that consecrated hosts are distributed earlier to the different groups by a Deacon or another person to be consumed at the appropriate time during the live-streamed mass. In the early church, during the persecution, the individuals were allowed to carry the consecrated hosts with them. My preference would be to authorize the local leaders to function as priests on such occasions. In that case even live-streaming may not be necessary. Homilies and catechisms can be live-streamed and the Eucharistic celebration can be left to small local groups.

초기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대형 교회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 사람들이 오늘 교회에 올 수 없다면, 그들이 작은 그룹 안에서 함께 모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초기 교회 안에서는 이런 그룹의 지도자가 빵과 포도주를 감사히 여겼고 공동체에 분포하였다. 우리는 오늘날 유사한 연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유행병이 유행하는 동안, 신체적으로 한 곳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각자 연결된다. 가끔 어딘가에서 녹화된 미사를 시청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예식(미사)에 참례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 그러한 가상의 참여가 유효한 참여라고 생각한다. 내가 첨부하는 파일은 그것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상으로 참여하는 것을 권할 수 있다. 즉 개인적으로나 가족으로서뿐만 아니라 몇몇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것은 공동체 의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문제는 성찬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는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영성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축성 되어진 제병들은 미사가 생중계 되는 동안 적절한 시간에 부제나 다른 사람에 의해 다른 그룹들에게 더 일찍 분배되어 소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박해 동안, 개인들이 축성된 제병을 그들과 함께 운반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나의 선호는 사제의 역할을 그렇게 할 수 있게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어쩌면 생중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강론과 교리는 생중계로 할 수 있고 성찬의 전례는 소규모 지역 단체에 맡겨질 수 있다.

 

2. 시몬 신부 질의응답

1) 질문: 토착화 신학의 담론이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상황에서 신학이 동아시아 지역사회에 호응을 얻기 위한 의제설정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I think, the discourse of indigenous theology doesn't have attention any more. What the direction of setting the agenda of theology for receive agreement to the East Asian local community?

 

1) Fr. Michael Amaldoss 답변

This may be so in some places and seminaries. But there is a lot of Asian theology being done in India, Indonesia, Philippines, Japan, etc. I do know about Korea and China. I think that something must be happening in Taiwan. I have a recent book on doing Indian theology. I shall send an e-copy through another email.

이것은 어떤 장소와 신학교에서도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등에서 아시아 신학이 많이 현존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나는 대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도 신학이 하고 있는 근래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이메일을 통해 전자 사본을 보낼 수 있습니다.

 

 

2) 질문: 동아시아 지역교회의 활성화를 위해 평신도 선교사의 양성이 중요합니다. 평신도 선교사가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떻게 양성을 해야할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It is very important for train to lay missionary for activation of the local churches in East Asia. How can we do good train for lay missionary with which character?

 

2) Fr. Michael Amaldoss 답변

I can only say that the training should not be academic, but pastoral, combining teaching, field work and reflection. Besides scripture and theology, it might involve introduction to human and social sciences like psychology, anthropology and sociology which will help them understand the social situation in which they are living and working. They are training people for life in community, not merely instruct them in the faith/catechism. The teachers also must have pastoral experience, not merely an academic degree.

나는 단지 수련이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사목, 교육하는것, 사목현장과 성찰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성경과 신학 외에도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과 같은 인간과 사회로 소개를 포함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들이 살아가고 일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신앙/교리 안에서 그들을 지시하는게 아니라 공동체안에서 살을 위해 사람들을 수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또한 단지 학업의 학위가 아니라 사목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3. 김종언 베난시오 선생 질문

 

1) 질문: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 말씀기쁜 소식을 우리 아시아 종교와 문화 전통을 통해서 받는 그분의 말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는 어떻게 연결을 시켜 이해 해야 할지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혹은, 인도에서 경우를 예로 들어서).

Please explain in more detail what the difference is or how to connect and understand the “Word of God” given to us by Gospel compared with the “Good news” through our Asian religious and cultural traditions. (e.g. in Korea or India.)

 

1) Fr. Michael Amaldoss 답변

I would recommend the reading of the document on “Human Fraternity” signed jointly by Pope Francis and the Grand Imam of Al-Azahar, Ahmed Al-Tayyeb in Abhu Dhabi in Feb 2011 and also the latest encyclical by Pope Francis “Fratelli Tutti”. Both document affirm that all religions are way to God, that people should have the freedom of religions and that people of all religions need to collaborate the cosmic human community. The Asian Bishops, in the FABC, have been saying for the past 20 years and more that the goal of mission is not the Church but the Kingdom of God towards which all religions are in pilgrimage together. So the different religions have to respect each other. They can also from each other. We still have to witness to Jesus Christ. But we need not seek to impose it on any one. God is reaching out to people in ways known and unknown to us. So what we need is to learn from each other and to collaborate in the promotion of justice, equality and peace in the world and build community. So we have to give up the idea that mission means that we have to go about converting people. If other people are attracted by Jesus, we welcome them. But we do not impose Jesus on anyone. So what is required is dialogue and collaboration. Pope Francis insists on this in his encyclical ‘Fratelli Tutti”. I encourage you to read it, rather than repeat here what he is saying.

 

So, to answer the question, when we encounter Asian religious and cultural tradition what is required is mutual witness and collaboration. God is respecting the pluralism and is also encouraging the collaboration. It is all God’s gift to different peoples. While learning from others, we can also share with them the riches we have received from God through Jesus. As Asians, while we are thankful to God for revealing his son Jesus to us, we should also value and integrate what God has revealed to our ancestors. In the same way the others too can learn the values and perspectives of Jesus. Dialogue then is the way of mission today. Please read the two documents referred to above.

 나는 20112월에 Abhu Dhabi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Al-AzaharGrand ImamAhmed Al-Tayyeb에 의해 공동으로 서명한 인류 박애의 문서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최근 회칙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읽기를 권고 하고 싶습니다. 것입니다. 두 문서는 모든 종교가 하느님께 가는 길이며,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모든 종교의 사람들이 우주 인류 공동체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FABC의 아시아 주교들은 지난 20년 동안 선교의 목표가 교회가 아니라 순례안에서 함께 모든 종교를 향하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더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서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하나에 그것을 부과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알려지고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세상의 정의, 평등, 평화를 증진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가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매료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에게도 예수 님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대화와 협력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신의 회칙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서' 주장합니다. 나는 오히려 그가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그것을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그래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우리가 종교적인 아시아인과 문화적 전통을 만났을 때 그것은 상호적인 증인과 협력을 필요로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다원주의를 존중하시며 그것은 또한 협력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선물인 전부입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배우는 동안,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물을 그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드러나기위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동안 우리는 또한 하느님껫 우리 상들에게 드러내신 것을 가치있게 융합해야 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이들도 예수님의 가치와 관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화는 오늘날 선교의 방향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개의 문서를 읽어보십시오.

 

2) 질문: 급성장하는 복음주의 파, 오순절 파, 은사주의 파 등 개신교회들은 가난한 신자들은 양이 아니며 소비자로 보고 접근합니다. 권력의 종말 (모제스 나임 저) 에 의하면, 경이로운 성장을 하는 (거듭난 자들) 비율은 인도에서 인구의 5% 정도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또 이런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 교회는 주류 교회가 잘 돌보지 않는, 가난이 일상화 되고 소외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탁아, 구직 지원, 편의 시설 등을 제공하면서 부의 축척과 번영을 노골적으로 축복하며 엄청난 교세를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 지역의 전통 리듬에 맞추어 성가를 부르는 등 지역 환경에 맞추어서 신자들에게 친근하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천주 교회가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시아 지역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좀 더 현실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선교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지 또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The Protestant churches, such as the rapidly growing evangelical school, the Pentecost school, and the principle of grace school, are approaching believers as not a sheep but the consumers. According to “The end of power” (writer; Moise’s Naim) the proportion of “The born again people” Rapidly has risen to about 5% of the population in India. And more and more people are going to these church. Their church is expanding its immense power, openly blessing the accumulation and prosperity of wealth, focusing on day care, job support, and amenities for those who feel poverty, marginalized, and not well cared for by mainstream churches. In addition, they are building trust with believers in accordance with the local environment, such as singing songs according to the traditional rhythms of their own region. In this regard, wonder if Catholic Church is considering the way, or would be another way to approach missionary work that would be actually realistic for many poor people in Asia who desperately need the Gospel.

 

2) Fr. Michael Amaldoss 답변:

I would say: Leave those groups alone. Let them worship in any way they want. After all we also have today Catholic Pentecostal groups who do the same kind of praying and singing. We also help the poor with our social projects, hospitals and schools. May be we need to popularize and inculturate our way of praying, singing, etc. We no longer pray in Latin. We need not limit ourselves to European music. Let us take into account the needs and tastes of the people. I am sure that God will listen to our prayer whatever form it takes. I would only add that, besides praying and singing like those groups, we also need time for quiet prayer and meditation. Quiet prayer and meditation in silence is not foreign to Asia. It is part of Buddhism (Zen) and Hinduism (Yoga). The Roman rituals may not be helpful to us and they are not obligatory. Let us pray and praise God as the Spirit inspires us.

나는 그 단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 찬양하도록 하십시오. 결국 오늘날 우리도 또한 기도하고 찬양하는 같은 종류를 하는 가톨릭 성령강림 그룹이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사회 프로젝트, 병원과 학교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아마도 우리는 기도하고찬양하는 우리의 방향을 대중화학 토착화는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라틴어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럽 음악에 자신을 제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하고 취향하는 것을 차지하도록 하자! 나는 하느님께서 그것을 가져오는 무어이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리시리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그 단체처럼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 외에도 조용한 기도와 명상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묵 안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은 침묵의 명상은 아시아에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교 ()와 힌두교 (요가)의 일부입니다. 로마의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의무적이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도록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찬양을 합시다.

 

3) 질문: 201719California 아실로마에서 AI conference 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일론 머스크 스티븐 호킹, Facebook, Apple, Google, Micro Soft 바이두 등 4차산업 관련 업체와 CEO 들이 경제, 법률, 철학자 등과 만나 아실로마 AI 23원칙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이 지적하신 것 같이 4차 산업혁명은 종교 혁명이 일어나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AI가 인간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관해 토론하고 또 원칙을 결정하는 협의체에 대해서 그들의 초청 여부에 관계없이 이런 원칙 설정에 종교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지?

On January 9, 2017, there was an AI conference in Asilomar, California. At there, the 4th industry companies and CEOs, including Elon Musk, Stephen Hawking, Facebook, Apple, Google, Micro Soft, Baidu, etc. met with economists, law and philosophers and draw up the 23 principles of Asilomar AI. As Father pointed out,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seems to be a religious revolution. So, wouldn't it be necessary for the religious community to positively participate in the establishment of these principles, regardless of their invitation to discuss the impact of AI on the human future?

 

3) Fr. Michael Amaldoss 답변

Secularization does not start with AI. AI may give the humans a sense of power. The important thing to realize that the power of the AI is not unlimited. Ultimately we have created it and we are its masters. AI is not an autonomous entity, except in a limited sphere designed by the humans and under their control. Facebook, Apple, Google and Microsoft do not function on their own. We have also to realize that while we are masters of the AI, we are not masters of Creation. Tsunamis and Pandemics will keep reminding us of our vulnerability. I do not anything about the Asilomar and its 23 principles that are mentioned.

세속화는 AI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AI는 사람에게 힘의 감각을 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AI의 힘이 무제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AI를 창조했고 우리는 그들의 주인입니다. 궁극적으로 AI는 인간의 통제 아래에서 인간에 의해 설계되어진 제한된 영역을 제외하고 자주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과 마이크로 소프트는 그들 자신위에서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AI의 주인에 반하여 창조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쓰나미와 전국적인 유행병은 우리의 약점이 있음을 계속 상기시킬것입니다. 나는 아실로마와 아실로마의 언급 된 23가지 원칙에 대해 어떤것도 하지 않습니다.

 

4) 질문: 만약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격화를 추구하다가 실패하면 불가능함을 깨닫겠지만 불경한 방향으로 흘려갈 우려도 있는데,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될 일이라고 보시는지,,,

If they fail in their pursuit of deification through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y will realize that it is impossible. But there is also concern that they will be lost in an unscrupulous direction. Would it be OK to just watch?

 

4) Fr. Michael Amaldoss 답변

If God is God, the humans can never deify or divinize themselves or their AI. But, of course, even God cannot stop the humans from misusing AI, especially if some people become mad and pretend to be divine! Just as we have control over nuclear power today, there should be social and political control also over AI and its use. An autonomy for the AI is not merely a Christian problem, but a one for all religions and even a human problem. It is the tension between man and the machine. So we should take a human approach involving even non-believers.

만약에 하느님이 하느님이시라면, 인간들은 결코 그들자신들이나 AI를 신격화하거나 신성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론, 하느님조차도 사람들이 AI를 오용하는 것 것을 막을 수 없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되고 신성화 되기위한 것처럼 되었을지라도! 단지 우리가 오늘날 핵무기 이상을 조절하는 것처럼 AI와 그것의 사용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통제도 하여야 한다. AI를 위한 자율은 단지 그리스도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종교와 심지어 인간의 문제를 위한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과 기계 사이의 긴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무신론자를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5) 질문: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읽어내어 그때 상황에 따라 비위를 미리 알아서 맞추어 주면서 online에 연결 된 사람들을 행복한 듯 착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Big Data 에 의거해서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을 부드럽기는 하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는 Big Mother 의 존재가 신앙 생활에 큰 위협이 되지않을까 우려됩니다. 이런 인위적인 행복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을 묶어 두려고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체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

They read our mind and adjust to our feelings in advance regarding the situation based on the Big Data, so make people feel happy when connected to the online.

It is also feared that Big Mother's presence, which is soft to present to people under Big Data but tries to control them not to dare refuse, poses a major threat to religious life.

Do you think there is a need for the church to speak out against the big businesses group leading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o keep people tied up while providing these artificial happiness?

 

5) Fr. Michael Amaldoss 답변

AI can read our minds and feelings. But they cannot stop us from changing them. It is the task, not only of the Church, but of every one all the humans - to establish structures of control and oversight. It is not only a religious task, but a human task. All human should be interested in defending their freedom. People with power will try their tricks. But the community must establish structures of oversight. We could also think of the moral education of the people involved in developing and managing AI.

AI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변화로부터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뿐만 아니라 제어하고 감독하는 구조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모두에게 과제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과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과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속임수를 시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는 감독하는 구조를 설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AI를 개발하고 다루는 것안에서 포함된 사람들의 윤리적인 교육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6) 질문: Shouldn't the religious community ponder and advise at the attempts to combine human beings and machines, such as attempts to implement human brains in computers (trans- humanist)?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구현하려는 시도 (트랜스 휴머니스트) 등 인간과 기계를 결합 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종교계가 심사숙고하고 의견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지?

 

6) Fr. Michael Amaldoss 답변

I think that this is a hypothetical question. I do not think that it is possible to implant the human brain in machines.

나는 이것은 가설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계에 사람의 두뇌를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질문: Regarding the medical and scientific communities trying to manipulate genes, is Catholicism actively involved and presenting religious and moral opinions?

유전자를 조작하려는 의료계와 과학계에 천주교는 적극적인 참여와 신앙적 도덕적 의견 제시를 하고 있다고 보는지요?

 

7) Fr. Michael Amaldoss 답변

I think that the moral theologians are involved in addressing this problem. It will be good to consult a moral theologian on this issue.

나는 윤리 신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슈에 대한 것은 윤리신학자들이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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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질의응답 디지털팀 2020.11.23 80
56 12회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동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신학 방법론적 성찰 file Sr.이레나 2020.11.11 126
55 12회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교와 영성 file Sr.이레나 2020.11.04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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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1회 2. 심포지엄 축사 : 김문상 신부(가톨릭신문사 사장) file Sr.이레나 2020.09.23 80
51 11회 3.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1회 심포지엄 격려사 - 염수정 추기경 서울 대교구장 file Sr.이레나 2020.09.23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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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1회 5. 제1발표 국문초록 : 정준교 소장 file Sr.이레나 2020.09.23 40
48 11회 6. 제1발표 : 한 노인의 꿈 :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청소년 사목 - 정준교 소장 file Sr.이레나 2020.09.23 43
47 11회 7. 제2발표 국문초록 : 박동호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40
46 11회 8. 제2발표:형제애와 연대의 뉴 노멀(new normal) - 박동호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25
45 11회 9. 제3발표 국문초록 : 김정용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18
44 11회 10. 제3발표 : 코로나 사태와 교회: 인간 구원의 성사인 공동체 - 김정용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19
43 11회 11. 제4발표 국문초록 : 정희완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21
42 11회 12. 제4발표 : 코로나 시대의 신앙, 종교사회학적, 교회론적 전망에서 – 정희완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19
41 11회 13. 제5발표 국문초록 - 조현철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15
40 11회 14. 제5발표 : 코로나19와 생태환경: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 조현철 신부 file Sr.이레나 2020.09.23 14
39 11회 15. 제6발표 국문초록 - 박태균 교수 file Sr.이레나 2020.09.23 19
38 11회 16. 제6발표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동아시아의 변화와 교회를 위한 제언 - 박태균 교수 file Sr.이레나 2020.09.2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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