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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jpg

바오로는 원래 이름이 사울이며, 철저한 유다교 신자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극적인 회심 후에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그리스도교를 널리 전해서 세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소아시아라고 불리던 현재의 터키 동남부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사도 21,39) 5-10년경에 태어나서 유대교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정열적으로 유다교를 철저히 신봉하였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예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 사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별안간 하늘에서 강하게 번쩍이는 큰 빛을 보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음성을 듣고 땅에 엎어졌습니다. 사울은 다마스커스로 가서 만난 하나니아스가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사도 22,15)라고 말한 대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주님과 신비로운 친교 속에서 주어진 사명을 준비합니다.

마음속에서 강렬하게 체험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이름을 바오로라고 바꾸고, 3차에 걸쳐 선교 여행을 다니며, 박해와 목숨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조금도 굴함 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박해자도 극적으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은 그를 열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바오로 한 사람의 회심은 이후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바르나바 사도였습니다(사도11,21-26;13,1-3).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키프로스 섬의 레위 지파 출신으로서,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복음과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교우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듯이, 바르나바는 신앙공동체를 훌륭하게 가꾸었습니다. 교우들은 교회를 핍박했던 바오로를 만나기를 꺼려했지만, 바르나바는 가까운 타르수스로 찾아가서 바오로를 안티오키아에 데려와서 격려하며, 그의 은사와 사명을 알아보고(사도 9,26-27), 일하도록 길을 열어주며 선교 사명에 동행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여행(45-49)을 터키에서, 2차 선교여행(50-52)을 터키와 그리스에서, 3차 선교여행(53-58)을 터키와 그리스에서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아시아 지역에서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에 노력했던 터키는 한때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할 만큼 복음이 널리 뿌리를 내리며 열매를 맺었지만, 이슬람의 침공과 회유정책으로 이슬람국가로 바뀌었습니다. 복음화는 씨를 뿌리는 노력과 더불어 굳건하게 보호하고 키워가는 노력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바오로는 결국 유다인들의 극한 증오로 이스라엘에서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였고, 로마에서 재판받기 위하여 압송되는 과정에서 배가 좌초하여 몰타에서 3개월간 지내다가 시라쿠스와 나폴리를 거쳐 로마에 도착하였고, 로마 공동체의 신자들이 바오로를 맞이하였습니다(사도 28,1). 재판 결과 군사 한 명이 지키면서 로마의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선교하며 2년간 지내다가 67년경 순교하였습니다. 성 바오로가 참수되었던 순교지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세 개의 분수가 되었다고 하며, ‘성 바오로 순교 성당이 세워집니다. ‘성 바오로 기념대성당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대로 로마의 가도 주변에 세워져 세상 곳곳에 복음이 전해지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바오로 대성당의 동상 앞에는 진리의 설교자요 인류의 박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듯이, 바오로의 회심은 모세의 율법주의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변화되고, 이스라엘 민족주의로부터 그리스도교의 보편주의로 발전하였다. 이후에 그리스도교와 유럽의 헬레니즘 사상이 만나면서, 세계의 문화가 복음화되는데 있어서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만일 유럽으로 가지 않고 아시아 지역으로 나갔더라면 아시아는 지금보다는 좀 더 복음화되었을 가능성도 높지만, 그것은 단지 가정에 불과하고, 현재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바오로 사도와 같은 선교사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작성자 : 김동원 비오신부(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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